불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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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연구 및 체험

  • 완호당 낙현 진영
    1960년대 초, 54.5×40cm 견본채색, 개인소장

  • 월주 원덕문
    (月洲 元德文, 1913~1992)
우리나라 불교미술에서 조선후기 불화승의 활동으로 현재 많은 불상과 불화들이 남아 있는데 이런 조선후기 화승들의 활동에는 각 지역의 사찰 내 불화소에서 화승을 양성했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흥천사 불화소는 경상도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유성과 수룡기전의 화맥을 원류로 하여 19세기 말에 완호당이 흥천사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어 그의 초기 활동지역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서울 ․ 경기지역의 화풍과 경상도 화풍의 영향을 함께 받아 완호당의 화풍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완호당이 1920년대 부산의 범어사 복천암에서 불화소를 개설하여 월주가 그의 문하에서 입문하여 사사 받았고 완호당이 1931년에 입적한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흥천사 불사 인연으로 흥천사에 주석하기 시작하여 완호당과 관련 있는 흥천사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1972년 월주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단청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1992년에 입적할 때까지 흥천사에서 불화소를 개설하여 불교미술 활동과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그의 화풍을 잘 계승한 소운 김용우가 월주고전미술전수원을 운영하여 흥천사 불화소의 화풍을 잇고 있다.

흥천사 불화소의 화맥은 다른 화맥과 달리 기록을 통하여 그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다. 수룡기전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화초첩이 완호당에게 전해지고 그 것이 다시 월주 그리고 소운에게 전해졌다.

또한 완호당의 후기 작품에 월주의 호칭이 보이고 있어 완호당과 월주의 사승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고, 월주는 소운에게 불명을 지어 준 계첩과 화맥을 전하는 글을 내려 주어 월주의 정통성이 소운에게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불화초첩

  • 월주에게 받은 계첩

  • 월주스님이 소운김용우 선생에게 화맥을 전하는 글
이러한 자료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기능보유자와 중요무형문화제 제118호 불화장 기능보유자에게도 보이지 않는 자료로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